일기

무지 무지스러운 영화, 리틀포레스트

By 2018-03-22 No Comments

날씨 | Cowichan sweater zip-up

 

리틀포레스트를 영화관에서 봤다. 실은 리틀포레스트가 초면은 아니다. 일본 만화가 원작인 리틀포레스트의 한글판 만화책을 과거에 구매한 경험이 있다. 당시 표지의 화풍과 문구에 끌려 교보문고에서 구매했다. 나 나름대로 일본 작품의 내러티브에 익숙하다고 자부했었지만, 굴곡이 거의 없는 잔잔한 분위기와 일상적인 전개에 지루함을 느껴 읽기를 중단했고, 두 권으로 구성된 책을 주변인에게 선물 했다.

그랬던 리틀포레스트가 영화로 나왔다. 그것도 김태리와 류준열이 주연으로. 만화책을 볼 때의 잔잔한 분위기와 일상적 소재에 대한 긴 호흡의 지루함이 한국식 요리와 영상이라는 언어로 더해지니 더욱 흥미로운 내러티브로 느껴졌다.

원작의 자급자족, 유기농 라이프라는 주된 소재는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도 이를 충실하게 다루었다. 조금은 낯설었던 일본식 전통 요리는 한국식 요리로 적절하고 이질감 없이 대체되었다.

근래에 일상성을 소재로 한 방송 프로그램이 공영방송에서 많이 방영됐다. 식도락 문화를 주된 방송 콘텐츠로 삼는 수요미식회나 삼대천왕 같은 프로그램부터, 전원생활에서 자급자족 세 끼를 먹는 것을 주된 소재로 풀어내는 삼시세끼 처럼. 이러한 소재가 일상화된 요즈음, 리틀포레스트는 좀 더 익숙한 재미로 가득했다.

텃밭에서 채소를 재배하고 그것을 요리하는 과정은 내 시선을 압도했다. 특히, 아카시아꽃 튀김이라든지 양배추 샌드위치 같은 채소의 싱그러운 식감과 튀김옷을 입히고 조리하는 장면은 시각과 청각을 넘어서 오감을 자극했다. 영화가 끝나고서도 혜원이 보여줬던 영상미 가득한 장면은 마음속에 여운이 남았다.

 

영화 전체를 감도는 동시대적 미장센 또한 관전 포인트이었다. 보는 순간 신혼일기 구혜선-안재현 편을 생각나게 했던 혜원(김태리)의 주방(따지고 보면 어머니의 주방)은 도기류와 유리병, 그리고 목기는 내게 무형의 스승 같은 브랜드, 무인양품의 쇼룸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줬다. 로고나 브랜드의 색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사용 목적에 충실한 형태와 재질로 디자인된 소위 슈퍼노말(super normal) 제품들. 나무 마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현대적인 창틀과 통유리, 그리고 타일로 상판이 채워진 주방의 ㄱ자 바(bar)는 지금 당장이라도 커피를 한잔 내리고 싶은 구성이었다.

극 중 혜원이 입었던 의상 또한 보는 내내 즐거움을 줬다. 전원생활에서 추운 날씨를 대비한 듯할 필요에 의한 멋 부리지 않은 옷차림이었지만, 스웨터 중에서도 본질만을 남긴 것 같은 원형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의상을 고심 끝에 선택한 것 같았다. 나 진짜 따뜻해, 라고 말하는 듯한 아란(aran) 스웨터와 농경지에서 수풀을 열심히 해쳐갈 것 같은 탐험가의 장화(아마도 디엔디파트먼트에서판매하는 그것이 아닌가 추측),

그리고 겨울의 풍경이 굵은 짜임으로 들어간 울 소재의 코위찬(cowichan) 스웨터까지 클래식하면서 군더더기 없이 잘 만든 것같이 보이는 의복이 군데군데 등장한다. 모든 미장센이 계절감과 내러티브에 이질감이 없으면서도 하나하나 꼬집어 보면 깊은 이야기가 있는 의복이었다.

최근 사용하기 시작한 일본 도기 브랜드 킨토. 바닥에 얕은 배색의 유약이 발린 도기가 만들어내는 온기는 전원생활에서 담아낸 한끼가 현대적이면서 전통적으로 어우러지는 모습이었다. 도시 생활에서 사용할 때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도기의 투박하면서도 따뜻한 질감이 나무 전반적인 공간에 놓였을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냈다.

 

소설가 워커 퍼시가 ‘영화 관객’에서 말했듯이, “탐구란 자기 인생의 일상성에 주저앉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65>

오스 기니스, 인생 : 복 있는 사람, 2017

 

소소한 일상에 대한 정성스러운 탐구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이런 작품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