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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교보문고 핫트랙스, 문구류 섹션으로 향한다. 일본 용품브랜드 미도리(midori)의 매대 앞에서 기웃거리다가 스태프에게 묻는다.

“혹시 미도리 펜 리필심을 살 수 있을까요?”

미도리 펜을 쓰기 시작한 건 2014년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나는 초콜릿 색으로 코팅한 미도리 펜을 사용했는데, 잃어버린 후 2015년에 황동(brass) 소재 펜을 다시 사서 지금까지 쓰고 있다.

핫트랙스나 문구 용품 편집숍에 방문할 때마다 미도리 펜의 리필심을 찾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오프라인 구매를 희망하지만, 리필심을 갖추고있는 매장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다 결국은 인터넷 주문을 통해 구입하는데, 한 번 펜을 리필하면 3개월 정도 사용이 가능하기에, 리필심 3~4개를 한꺼번에 사는 것은 어느새 연례행사가 되었다.

 

나에겐 어디를 가든 휴대하는 두 개의 필기구가 있다. 하나는 미도리의 황동 펜이고, 다른 하나는 삼청동 슬로우 스테디 클럽에서 산 DAMTA의 나무 샤프다. 어릴 적부터 고쳐지지 않는 악필 덕에 물 위를 유영하듯 미끄러지는 듯한 필기감보다는 힘을 적당히 주어 꾹꾹 눌러쓰는 펜에 더 손이 간다. 특히 미도리 펜의 그립감은 정말이지 오밀조밀하다. 사용하지 않을 때 황동 부분 안에 숨어있는 나무로 감싸진 펜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손때가 묻어 색이 깊어진다. 적당히 매끄러운 촉감 또한 매력적이다.

언젠가 미군으로 복무하고 있던 친구는 미도리 펜을 보며 ‘7.62미리미터’라고 했다. 순간 나는 무슨 소리인지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다시 말해주길 7.62미리미터 총알과 흡사한 크기와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군 복무를 마쳤음에도 내게 미도리 펜의 형태는 총알이라는 상징성보다 미도리 브라스 펜 자체로의 인식이 더 강한 것 같다. 생각해보면 이 제품의 정식 명칭이 ‘Midori Brass Bullet Ballpoint Pen’임에도 불구하고.

꽤 편하지 않은 리필심 구매에도 미도리 펜을 몇 년째 지속해서 사용하는 이유 또한 리필심으로 귀인 한다. 어릴 적부터 펜의 사망을 알리는 시점에 투명한 플라스틱 펜대를 통해 겔 잉크가 어느 정도 남아있는 것을 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때 당시에 이것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으나, 미도리 펜을 사용하며 비로소 낭비 없이 펜을 사용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리필심을 교체하는 과정 자체도 간편하지만, 검은색 겔 잉크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다 쓴 리필심을 보고 있자니, 끝까지 역할을 다한 성실함에 고마움이 생긴다.

 

image @johnmin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