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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라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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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Nike Air Pegasus 83

 

여자의 키는 약 14, 15살 때까지 큰다고 한다. 실제로 나는 중학교 3학년 162.25cm로 측정된 이후 지금도 정확히 거기에 머물고 있다. 몸무게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내 안에 무언가가 점점 무거워진다. 어깨도, 머리도, 마음도 작년보다 더 무겁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무겁다. 어깨는 사회인의 책임감, 머리는 어른의 고집, 마음은 여자의 감정이다. 종종 이 셋 중 어느 하나라도 혼자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무거워지면, 나는 말로써 그 무게를 덜 수 있다는 착각을 한다. 하지만 구두의 나눔은 한순간일 뿐이다. 결국, 내 무게를 이해하는 건 나 자신과 하나님뿐이다. 내 마음의 무게는 결코 남이 함께 짊어질 수 없다. 그래서 남에게 나의 어려움과 상처는 더 가볍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나 자신도 남의 무게를 내 것만큼 신중하게, 소중하게 다루지 않는다.

마음이 무거워질수록 입도 무거워야 한다. 말로 풀기보다는 기도로 하나님께 드리자. 어른이 돼서 입이 아이만큼 가벼운 건 곤란하니까. 더는 키가 크지 않는다고 성장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 내가 무심코 꺼낸 말이 남의 입술에 가볍게 오르내리다 나에게 나를 더 죽이는 무게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

면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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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Supreme X Northface Duffle

 

한 달 반 만에 면도했다. 면도기를 대기 전 쪽가위로 수염 기장을 잘라보려 했지만, 짧은 쪽가위로 짧은 수염을 자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집게손가락으로 턱수염을 부여잡고 가위질을 해보지만, 피라도 안 나면 다행, 수염이 짧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습식 면도기를 꺼냈다. 당최 쉐이빙폼을 쓰지 않는 편이라, 클렌징폼으로 거품을 열심히 묻혀본다. 면도날도 새로 갈아서 깎아보지만,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 때문에, 세 번 이상 면도질이 어렵다. 받아놓은 물에 면도기 헹구기를 열댓 번. 조금 밀고 나면 털이 촘촘히 박혀 면도기는 미끄러지지만 그래도 잘 헹구고 밀어본다

아침마다  때보다 확실히 오래 걸렸다. 고개를 내밀고 수염을 만지며 밀기를 십여 분, 서서히 맨살이 고개를 내민다. 드러나는 맨살에 토너의 따가움이 상상되지만 그래도다 밀어버리리면도질을 끝마쳤다

면도를 마친 후, 거울을 보니 무언가 심심하다. 콧수염이 없어지니, 입 주위는 조금 더 좀스러워 보인다. 거울 밑 선반에 고개를 떨구니 수염이 거칠게 박힌 면도기가 보인다. 괜히 쓸데없이 수염에 내 죄를 대입시켜본다. 매일의 고백은 주와 더 빠르게 친밀해지지만한 달 반만의 고백은 빠르게 다가서기 조금 어렵다. 수련회를 다녀온 직후의 밤이라 그런지 면도하면서까지 묵상하고 있다.

 

photography @johnminlee

상어를 위한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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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H&M by Alexander Wang Rain Jacket

 

“동물 친구들이여, 난 너희들의 탐욕을 탓하지 않아. 본능이니 어쩔 수 없어. 하지만 우리 삶의 의미는 그 본능을 다스리는 데 있어. 너희는 틀림없는 상어야. 하지만 네 안의 상어를 다스리면 너희는 천사가 될 수 있어. 왜냐면 천사는 그저 잘 다스려진 상어일 뿐이니까. 형제들이여, 여길 봐. 예의를 좀 갖춰 보도록 해. 고래를 잡아먹을 때 이웃의 몫을 빼앗으려 달려들면 안 돼. 너희는 고래를 먹을 권리도 없어. 고래의 임자는 따로 있어. 너희의 입이 남의 입보다 큰 건 알겠지만, 큰 입을 가진 동물의 배는 작은 법이야. 큰 입은 꼭 무언갈 목에 넘기려고 씹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먹지 못하는 작은 새끼 상어들이 먹기 좋게 씹어서 먹여주기 위함이야.

더는 너희들에게 말해봤자 소용없어. 너희는 악마처럼 계속해서 서로를 꼬리로 채찍질하겠지. 너흰 내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아. 더는 설교해봤자 배가 다 찰 때까지 들리지도 않겠지. 그리고 너희 같은 욕심쟁이의 배는 절대 차지 않아. 설령 다 차더라도 내 말이 들리지 않을 거야. 배가 차는 순간 이미 바다 깊숙이 가라앉고 말 테니까. 그러면 내 말이 하나도 안 들릴 거야. 영원히.”

<모비 딕> (1851)에서

ㅁㅈㅁ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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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Seoul Community Radio T-Shirt

 

작년 서울로 상경했을 때 가장 처음 배운 점 중 하나는 여기선 절대 밖에서 조깅을 못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 매연인지 공장 연기인지 뉴스에서만 보던 중국의 미세먼지인지 뭔지 그때는 몰랐지만, 조깅 20분 만에 타들어 가듯 아파오는 허파를 핑계 삼아 작년 봄 다이어트를 포기한 기억이 있다.

최근 혼자 살게 되면서 배운 점은 서울에선 창문을 열어놓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음식 냄새 배는 게 싫어서 창문을 자주 여는 편인데 더는 그럴 수가 없다. 계속 닦아도 닦아도 줄지 않는 먼지가 대체 무슨 까닭에 모이는 건지 의아해하던 중 어느 날 깨달았다. 전날 대청소를 했는데도 먼지 덩어리가 굴러다니는 원인은 단 하나. 바로 바깥의 미세먼지가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와 켜켜이 쌓이는 것이다.

이번 주 사무실을 떠나 외근하며 배운 점은 난 몹시 나쁜 팀장이라는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각 팀원의 감정에 상관없이 불신하게 행동하며 그들의 신뢰를 잃고 있다. 처음 팀을 구성했을 때 사람을 일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한 사람 한 사람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하자고 다짐한 게 일 시작한 지 넉 달도 안 돼 파도에 쓸리는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지고 또 무너진다.

달리는데 숨만 찰 때, 방바닥을 수시로 쓸어도 먼지만 쌓일 때, 열심히 한 다짐이 무너지기만 때, 같은 벽에 부딪힌다. 매일 기도로, 매주 예배로, 매년 선교로 나 자신을 회복해도 내 무기력함에 유지가 되질 않는다. 사실 미세먼지 때문에 내가 다이어트를 못한 게 아니고 미세먼지 때문에 내 방에 먼지가 쌓이는 게 아니다. 내가 좀 더 열심히 훈련하고 좀 더 열심히 청소하면 된다. 그것을 방해하는 걸림돌은 오직 내 안의 죄뿐이다. 나 스스로는 도저히 제거되지 않는, 나도 모르는 사이 미세하게 쌓여 내 숨통을 막아버리는 먼지 덩어리들. 미세먼지가 아닌 미죄먼지.

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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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Stutterheim Raincoat

 

구약 성경 사무엘상에 등장하는 한나는 교역자 엘가나의 첫 부인이지만 아이를 가지지 못해 둘째 부인 브닌나에게 핍박받는다. 사무엘상 1장 5절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말씀에 의하면 한나가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한 신체적 문제가 아니라 신께서 굳이 개입하셔서 임신을 막는 것이다. 하지만 한나가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그녀가 불임이라는 사실보다 브닌나의 괴롭힘이다. 당시에 불임인 여자는 쓸모가 없었고, 또 저주받은 자로 찍혔다. 7절은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라고 쓰여있는데, 이것은 한나가 아이를 원해서가 아니라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일상 속에서 나는 어떠한 결핍이 있고 무엇을 채움 받기 원하는지 생각하는 한 달이었다. 내가 가장 필요한 것은 따로 있는데 혹시 나는 주위의 시선을 더 두려워하며 내가 먹어야 하는 것 말고 인스타그램같이 쓸데없는 것만 섭취하진 않는가. 아주 특정한 성격의 매체를 운영하면서 많은 비판과 기대를 동시에 받는다. 나는 에디터라서 이렇게 생겨야 하고, 패션 업계인으로서 저렇게 입어야 하고, SNS 활동을 이만큼 해야 하고, 행사를 저만큼 가야 하고, 또 여자로서 이미 알게 모르게 단정된 활동 범위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나에게 주지 않는 것 중에 내가 정말 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타인의 만족을 사려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먼저 함몰할 수도 있겠다고 깨닫게 해준 한나, 일단 그녀가 이번 달 나의 영감이다.

위 편집본은 비즐라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image @Gerbrand van den Eeckh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