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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포레스트

무지 무지스러운 영화, 리틀포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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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Cowichan sweater zip-up

 

리틀포레스트를 영화관에서 봤다. 실은 리틀포레스트가 초면은 아니다. 일본 만화가 원작인 리틀포레스트의 한글판 만화책을 과거에 구매한 경험이 있다. 당시 표지의 화풍과 문구에 끌려 교보문고에서 구매했다. 나 나름대로 일본 작품의 내러티브에 익숙하다고 자부했었지만, 굴곡이 거의 없는 잔잔한 분위기와 일상적인 전개에 지루함을 느껴 읽기를 중단했고, 두 권으로 구성된 책을 주변인에게 선물 했다.

그랬던 리틀포레스트가 영화로 나왔다. 그것도 김태리와 류준열이 주연으로. 만화책을 볼 때의 잔잔한 분위기와 일상적 소재에 대한 긴 호흡의 지루함이 한국식 요리와 영상이라는 언어로 더해지니 더욱 흥미로운 내러티브로 느껴졌다.

원작의 자급자족, 유기농 라이프라는 주된 소재는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도 이를 충실하게 다루었다. 조금은 낯설었던 일본식 전통 요리는 한국식 요리로 적절하고 이질감 없이 대체되었다.

근래에 일상성을 소재로 한 방송 프로그램이 공영방송에서 많이 방영됐다. 식도락 문화를 주된 방송 콘텐츠로 삼는 수요미식회나 삼대천왕 같은 프로그램부터, 전원생활에서 자급자족 세 끼를 먹는 것을 주된 소재로 풀어내는 삼시세끼 처럼. 이러한 소재가 일상화된 요즈음, 리틀포레스트는 좀 더 익숙한 재미로 가득했다.

텃밭에서 채소를 재배하고 그것을 요리하는 과정은 내 시선을 압도했다. 특히, 아카시아꽃 튀김이라든지 양배추 샌드위치 같은 채소의 싱그러운 식감과 튀김옷을 입히고 조리하는 장면은 시각과 청각을 넘어서 오감을 자극했다. 영화가 끝나고서도 혜원이 보여줬던 영상미 가득한 장면은 마음속에 여운이 남았다.

 

영화 전체를 감도는 동시대적 미장센 또한 관전 포인트이었다. 보는 순간 신혼일기 구혜선-안재현 편을 생각나게 했던 혜원(김태리)의 주방(따지고 보면 어머니의 주방)은 도기류와 유리병, 그리고 목기는 내게 무형의 스승 같은 브랜드, 무인양품의 쇼룸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줬다. 로고나 브랜드의 색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사용 목적에 충실한 형태와 재질로 디자인된 소위 슈퍼노말(super normal) 제품들. 나무 마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현대적인 창틀과 통유리, 그리고 타일로 상판이 채워진 주방의 ㄱ자 바(bar)는 지금 당장이라도 커피를 한잔 내리고 싶은 구성이었다.

극 중 혜원이 입었던 의상 또한 보는 내내 즐거움을 줬다. 전원생활에서 추운 날씨를 대비한 듯할 필요에 의한 멋 부리지 않은 옷차림이었지만, 스웨터 중에서도 본질만을 남긴 것 같은 원형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의상을 고심 끝에 선택한 것 같았다. 나 진짜 따뜻해, 라고 말하는 듯한 아란(aran) 스웨터와 농경지에서 수풀을 열심히 해쳐갈 것 같은 탐험가의 장화(아마도 디엔디파트먼트에서판매하는 그것이 아닌가 추측),

그리고 겨울의 풍경이 굵은 짜임으로 들어간 울 소재의 코위찬(cowichan) 스웨터까지 클래식하면서 군더더기 없이 잘 만든 것같이 보이는 의복이 군데군데 등장한다. 모든 미장센이 계절감과 내러티브에 이질감이 없으면서도 하나하나 꼬집어 보면 깊은 이야기가 있는 의복이었다.

최근 사용하기 시작한 일본 도기 브랜드 킨토. 바닥에 얕은 배색의 유약이 발린 도기가 만들어내는 온기는 전원생활에서 담아낸 한끼가 현대적이면서 전통적으로 어우러지는 모습이었다. 도시 생활에서 사용할 때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도기의 투박하면서도 따뜻한 질감이 나무 전반적인 공간에 놓였을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냈다.

 

소설가 워커 퍼시가 ‘영화 관객’에서 말했듯이, “탐구란 자기 인생의 일상성에 주저앉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65>

오스 기니스, 인생 : 복 있는 사람, 2017

 

소소한 일상에 대한 정성스러운 탐구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이런 작품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운수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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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 TOM DIXON Cube Stapler

 

타닥타닥.’

스템플러 소리가 정수리에서 난다. 진료실 침대 끝에 앉아 상처를 꿰맨다. 의료용 스템플심이 내 살을 집는다. 마취는 했지만 스템플심이 내 두상을 쫙 잡아당기는 느낌이 전해진다

12 50 점심시간 십 분 전에 병원에 도착했다. 접수창구에서 곧바로 진료카드를 작성한다점심시간이 가까워진 탓인지 창구직원분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지금은 진료가 어렵다고 말씀하신다. 나 역시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조아리며 한 마디 건넨다

이것 좀 봐주실 수 있나요…?” 병원 침상 끝에 머리를 조아리고 앉았다. 간호사는 두 손으로 가르마를 가르고 상처를 소독한다. 거즈를  눌러가며 피를 닦아내신다. 머릿속을 유심히 들여다본 간호사는 의사 선생님을 부른다.  진료실 문을 여시며 벌컥 등장한 의사 선생님은 양손으로 내 두상을 부여잡고 눈인사 후 수술 준비를 지시한다

12시경 조금 이른 점심시간 영진이와 대청마루기사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시켰다. 식당 앞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는데 인도에 문 밑이 긁혔다. 식사 후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연남동에 오면 매번 방문하는 아스트로노머스로 향했다. 카페 근처에 주차하고차 문이  긁힐세라 조심하며 차에서 내린다차 문을 닫고 고개를 들으며 한 걸음 띠는 찰나 무언가를 머리에 박았다. 건물 입구에 바깥으로 향해있는 철제 구조물 모서리에 머리를 찍혔다. 고개를 숙이고 아픈 머리에 조심히 손끝을 가져다 보는데멀건 피가 묻어난다. 곧이어 영화에서나 볼법한 핏줄기가 내 이마로 흐른다영진이는 황급히 차에서 휴지를 건넸고 머리를 감싸며 그대로 가까운 외과병원으로 향한다. 뚝배기가 깨졌다.

 

image @johnminlee

빨계떡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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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UNIQLO AIRism T-shirt

 

빨계떡 하나요

빨계떡, 계떡, 치즈빨계떡.. 누군가는 눈치챌지 모르지만 바로 틈새라면 집의 메뉴 이름이다.

빨 계 떡틈새 대표라면, 빨갛고 매운 계란 떡 라면.

    맵지 않고 구수한 계란 떡 라면

치즈빨계떡빨계떡 +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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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주문하다 메뉴 이름에 반했다. 각 라면의 특성을 음절에 담아내 표현하고 있다. 혼밥을 하면서 사색하는 자신을 보니참 너무 느낀다싶지만, 그래도 흥미롭다.

데게 분식집 라면의 메뉴명은 어미가 00라면으로 끝난다. 그런데, 틈새라면은 라면 전문 식당이라서 그런지 메뉴 이름에 라면이라는 단어는 없다. 대신 각 메뉴의 특징이 되는 식재료, 맛의 매운 정도와 특정 요리 스타일을 담아내고 있다.

음절 단위로 끊어서 읽히는 메뉴명 또한 틈새라면의 정체성과 잘 맞는다. 라면 전문 식당을 내걸기에 그들만의 요리 노하우와 비법이 있겠지만, 서민 음식인 라면을 자신들만의 해석으로 메뉴를 체계화 시켜놓은 것이 보기에 즐겁다. 일반 분식집 메뉴와 따지고 보면 크게 다를 것 없지만, 메뉴에 라면 두 글자를 없앤 것이 더 직관적이고 음절 조합이 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특히, 틈새 라면의 기본 메뉴인 빨계떡, 설명을 읽기 전에 감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매운 미각. ‘이라는 음절에 매운맛을 함축하여 담고 있다.

P.S 매운맛이 안 맞는다면이 적힌 메뉴는 피하시길

 

image @johnminlee

그럼요 당연하죠 네네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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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adidas x HYKE Jacket

 

4월부터 심상치 않았다. 서울대입구역 앞 떠들썩한 봉천로의 꺼지지 않는 술집 네온사인들은 여전했다. 하지만 원룸 고시텔과 생선가게가 있는 골목을 진입하는 순간 내 일상의 흐름은 깨져버렸다. 무언가가 바뀌어있었다. 공사 중이던 작은 구멍가게에 새로운 현수막이 달린 것이다. 황금빛의 거대한 현수막에는 깜찍한 하트모양 그림에 어울리지 않는 큼직하고 근엄한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네네치킨♡’.

내게 네네치킨은 쨍쨍한 햇살과도 같다. 언제든 보면 절로 미소를 짓게 하고 항상 그 속에 있고 싶다. 온종일 타인에게 시달리다 퇴근길에 배달 전화를 하면 유재석의 경쾌한 컬러링이 나를 맞이한다. ‘딴따딴따딴따딴따. 그럼요, 당연하죠, 네네치킨. 닷컴!’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한결같고 황홀하다.

봉천점 개점 첫날밤 들뜬 마음으로 유리문 안을 빼꼼 훔쳐봤다. “아가씨, 들어와서 보세요.” 주인아저씨가 친절하게 권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속으로 답했다. “아, 다음에 올게요!”

그 이후에도 매일 저녁 퇴근길에 지나치는 네네치킨 봉천점은 나를 끊임없이 유혹한다. 먹을까 말까를 1초에 수십 번 씩 고민하게 한다.

안에는 항상 아저씨와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분이 있다. 가끔 아저씨는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 앞에서 아줌마가 배달 음식을 다 포장하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대부분 두 분은 좁고 빈 가게 안에서 티비를 본다. 그 날도 어김없이 두 분은 나란히 앉아 무언 갈 시청하고 있었다.

지나가면서 문득 떠올랐다. 저 둘은 본인의 일상이 매일 네네치킨에서 티비를 보게 될 삶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당연히 몰랐을 것이다. 본인의 일상이 매일 네네치킨에서 티비를 보게 될 것이라는 걸 알았을 땐 어땠을까.

요즘 나도 도통 나의 미래를 예측할 수가 없다. 지금 사는 곳과 하는 일에서 어떤 식의 변화가 닥쳐올지 전혀 모르겠다. 나의 일상은 나의 의도와 의지로 주도하지만, 나의 인생은 나의 의도와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간다. 어쩌면 그건 당연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일단 더는 고민할 게 아니라 마음을 비우고 치킨을 시키겠다. 그리고 나의 일터와 보금자리가 아무리 작아도 누구든 밖에서 서성거리면 친절하게 들어오라고 환영하겠다. 그럼, 당연하지.

생강 쿠다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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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Navy Pocket T-shirt

 

오늘의 점심 메뉴는 특별히 맛있는 것을 먹기로, 세 남자가 스튜디오를 나섰다. 첫 목표는 미트볼이었으나, 불발. 마침 극동방송국 근처이었던 난 자연스레 하카타분코를 떠올렸다.

2007년, 그러니까 스무 살 무렵 홍대를 알아가던 나에게 일본라멘은 홍대에 위치한 여러 스트릿샾과 함께 홍대를 기억하는 것 중 하나이었다. 주말마다 놀러 오던 홍대에서 저녁 메뉴는 언제나 일본라멘이었다.

라멘을 먹을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반찬이 있었으니 그것은 생강초절임이었다. 그 당시 라멘집에 가면 하나같이 테이블 한켠에 올려져 있던 생강초절임과 김치.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반찬은 언제나 미니-항아리에 담겨 있었다.

돼지육수의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돈코츠와 새콤 알싸한 생강초절임을 곁들인 한 젓가락은 정말이지 완벽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라멘집 테이블에서 생강초절임이 사라졌다. 대신 부추무침 같은 반찬이 올라왔지만 좀처럼 그 한 젓가락이 잊히지 않았다.

그러던 오늘, 생강초절임이 다시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극동방송국 옆 골목에 위치한 하카타분코. 이랏샤이마세, 큰 목소리로 맞아주던 민머리 주방장님은 안 계셨지만, 기름이 잔뜩 낀 나무 마룻바닥을 보니 세월의 진함이 절로 느껴젔다.

테이블에 앉았다. 여느 때처럼 인라멘(가장 진한 정도의 돈코츠)을 주문하고, 반대편 라멘바를 구경하며 음식을 기다린다. 턱이 낮아 모든 조리 과정이 훤히 보이는 주방은 신뢰감을 준다. 진한 돈코츠 육수에 담궈진 면발, 그 안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는 차슈, 위에 올린 다진 마늘까지. 클래식 돈코츠와 생강초절임, 더할나위 없이 적절한 한 젓가락이다.

 

photography @johnmin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