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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포레스트

무지 무지스러운 영화, 리틀포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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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Cowichan sweater zip-up

 

리틀포레스트를 영화관에서 봤다. 실은 리틀포레스트가 초면은 아니다. 일본 만화가 원작인 리틀포레스트의 한글판 만화책을 과거에 구매한 경험이 있다. 당시 표지의 화풍과 문구에 끌려 교보문고에서 구매했다. 나 나름대로 일본 작품의 내러티브에 익숙하다고 자부했었지만, 굴곡이 거의 없는 잔잔한 분위기와 일상적인 전개에 지루함을 느껴 읽기를 중단했고, 두 권으로 구성된 책을 주변인에게 선물 했다.

그랬던 리틀포레스트가 영화로 나왔다. 그것도 김태리와 류준열이 주연으로. 만화책을 볼 때의 잔잔한 분위기와 일상적 소재에 대한 긴 호흡의 지루함이 한국식 요리와 영상이라는 언어로 더해지니 더욱 흥미로운 내러티브로 느껴졌다.

원작의 자급자족, 유기농 라이프라는 주된 소재는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도 이를 충실하게 다루었다. 조금은 낯설었던 일본식 전통 요리는 한국식 요리로 적절하고 이질감 없이 대체되었다.

근래에 일상성을 소재로 한 방송 프로그램이 공영방송에서 많이 방영됐다. 식도락 문화를 주된 방송 콘텐츠로 삼는 수요미식회나 삼대천왕 같은 프로그램부터, 전원생활에서 자급자족 세 끼를 먹는 것을 주된 소재로 풀어내는 삼시세끼 처럼. 이러한 소재가 일상화된 요즈음, 리틀포레스트는 좀 더 익숙한 재미로 가득했다.

텃밭에서 채소를 재배하고 그것을 요리하는 과정은 내 시선을 압도했다. 특히, 아카시아꽃 튀김이라든지 양배추 샌드위치 같은 채소의 싱그러운 식감과 튀김옷을 입히고 조리하는 장면은 시각과 청각을 넘어서 오감을 자극했다. 영화가 끝나고서도 혜원이 보여줬던 영상미 가득한 장면은 마음속에 여운이 남았다.

 

영화 전체를 감도는 동시대적 미장센 또한 관전 포인트이었다. 보는 순간 신혼일기 구혜선-안재현 편을 생각나게 했던 혜원(김태리)의 주방(따지고 보면 어머니의 주방)은 도기류와 유리병, 그리고 목기는 내게 무형의 스승 같은 브랜드, 무인양품의 쇼룸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줬다. 로고나 브랜드의 색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사용 목적에 충실한 형태와 재질로 디자인된 소위 슈퍼노말(super normal) 제품들. 나무 마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현대적인 창틀과 통유리, 그리고 타일로 상판이 채워진 주방의 ㄱ자 바(bar)는 지금 당장이라도 커피를 한잔 내리고 싶은 구성이었다.

극 중 혜원이 입었던 의상 또한 보는 내내 즐거움을 줬다. 전원생활에서 추운 날씨를 대비한 듯할 필요에 의한 멋 부리지 않은 옷차림이었지만, 스웨터 중에서도 본질만을 남긴 것 같은 원형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의상을 고심 끝에 선택한 것 같았다. 나 진짜 따뜻해, 라고 말하는 듯한 아란(aran) 스웨터와 농경지에서 수풀을 열심히 해쳐갈 것 같은 탐험가의 장화(아마도 디엔디파트먼트에서판매하는 그것이 아닌가 추측),

그리고 겨울의 풍경이 굵은 짜임으로 들어간 울 소재의 코위찬(cowichan) 스웨터까지 클래식하면서 군더더기 없이 잘 만든 것같이 보이는 의복이 군데군데 등장한다. 모든 미장센이 계절감과 내러티브에 이질감이 없으면서도 하나하나 꼬집어 보면 깊은 이야기가 있는 의복이었다.

최근 사용하기 시작한 일본 도기 브랜드 킨토. 바닥에 얕은 배색의 유약이 발린 도기가 만들어내는 온기는 전원생활에서 담아낸 한끼가 현대적이면서 전통적으로 어우러지는 모습이었다. 도시 생활에서 사용할 때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도기의 투박하면서도 따뜻한 질감이 나무 전반적인 공간에 놓였을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냈다.

 

소설가 워커 퍼시가 ‘영화 관객’에서 말했듯이, “탐구란 자기 인생의 일상성에 주저앉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65>

오스 기니스, 인생 : 복 있는 사람, 2017

 

소소한 일상에 대한 정성스러운 탐구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이런 작품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브랜딩을 위한 체크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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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다락투 닭곰탕 (보통)

 

나음보다
다름

2행으로 나눠쓴 제목은 색과 톤을 달리함으로 책표지에서 은은하게다름이란 글자를 강조하고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한번 표지의 부제를 읽었다.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무엇을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사실 그 위에 영어로 ‘Better is not enough. Be different.’라고 쓰여있지만, 한글의 부제가 이 책의 컨텐츠 기획을 더 친절하게 요약해주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마케팅서라고만 생각했지만, 그렇기엔 그 이상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음을 감지하고 부제를 다시 찾아보았다.

개인적으로 무슨 마케팅이라고 이름 짓고 명명하는 부분에 있어서 약간의 거부감이 있다. 왜냐하면, 사실 그 00 마케팅이라 명명하고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 그 내용이 잘 구성되어 있지 않아 논리적으로 이해도 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음보다 다름은 내 이런 의문을 본질적인 브랜드 기획으로부터 마케팅으로 나아감으로써 이해가 잘 됐다.

처음 이 책을 꺼내 든 것은 나에게 조금은 익숙한조수용이라는 이름 때문이다. , , ,  관한 일을 사업의 영역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JOH 컴퍼니의 대표인조수용님은 내가 흥미롭게 관찰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월요일 일과 중 하나는 magazine.B 팟캐스트로 풀어낸 B CAST를 듣는 일이다. 좋아하던 브랜드가 등장하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와 업계 관계자를 통해 통찰력을 전해 듣는 이 팟캐스트는 기독교 설교 다음으로 즐겨듣는다어쨌든 저자의 이름 조수용은 내가 이 책을 두말하지 않고 꺼내 들게 했다

책의 설명에 따르면 이 책은 마케팅 석학 홍성태 교수가 글을 쓰고 그에 적합한 브랜드 사례를 조수용 대표의 추천으로 구성했다고 한다. 나의 언어로 목차를 풀어보자면,  다섯 장으로 구성된 목차에서는 다름, 차별화란 무엇인가에 관해 설명 후 어떻게 다름이란 것을 잉태할 수 있는지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기준점을 서술 후, 브랜드를 어느 카테고리에서 등판시킬 것인지 그리고 그 대상의 다름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법에 대해 적합한 브랜드 사례를 통해 안내하고 있다. 기획과 마케팅을 다름이라는 꼭짓점을 두고 전개하고 있다

브랜드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책에 적힌 여러 질문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점검할 수 있다. 이러한 질문 요소는 저자가 그 분야의 내공과 통찰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이 질문만 따로 기록해놓고 현재 운영하는 그래픽디자인스튜디오 일을 되돌아볼 계획이다.

아래에는 읽었던 내용 중 인상 깊었던 몇 가지를 옮겨보았다.

 

템플레이트’(template)

 

와인을 배운답시고 이 와인, 저 와인 찔끔찔끔 마셔가며 맛을 비교하는 방식으로는 와인 맛 구별법을 익힐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한 가지 와인을 꾸준히 마셔봐야맛의 템플레이트가 생겨서 다른 와인과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그의이야기를들으면서김치를 떠올렸다. 우리 한국인에게는 각자에게 익숙한 김치 맛이 있다. 그러니까 사람마다김치하면 떠오르는 템플레이트가 있기에, 다른 김치 맛을 시원하네, 텁텁하네 등으로 금세 구별하는 것이다.

<p55>

 

나에게도 친구들과 커피 맛에 관해 이야기 할 때 드는 비유가 하나 있다. 사무실에 방문하거나 같이 여행을 간 친구들에게 에어로프레스로 내린 커피를 대접하는 일은 내게 하나의 습관이다. 이렇게 커피를 한 잔씩 나눌 때 친구들에게 종종 듣는 이야기가 있는데난 커피 맛을 잘 몰라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 또한 맛, 감각이라는 것에 대하여 김치를 예로 들며 이야기를 나눈다. 김치를 맛보면 자기 집 김치와 음식점 김치가 어디가 다른지 콕 집어 말 할 순 없다. 그러나 우리 집 김치와 다른 집 김치 맛은 구별할 수 있다. 집 김치를 평생 먹듯 반복된 경험을 하다 보면 그 경험을 통해 감각이 쌓이면서 비슷하지만 다른 두 대상을 미세하게 구별할 수 있는 자신만의 기준이 생긴다. 커피도 마찬가지로 꾸준히 한 커피를 마시다 보면  맛에 대해 기준이 생기고 그 기준점을 통해 다른 커피 맛을 구별할 수 있다.

아래는 나영석 PD 2014년 한국경연학회에서 나눴던 내용이라고 한다.

 

크리에이티브에 대해

 

프로그램이 성공하려면 세 가지를 갖춰야 합니다. 재미있거나, 의미 있거나, 새로워야 해요. 크리에이티브에 대해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크리에이티브는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라는 점입니다. 없던 것에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있던 것을 새롭게 조합하는 것이지요.

<꽃보다 할배>를 처음 기획할 때는해외 배낭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어볼까하는 아이디어에 불과했어요. 그 후누구의 배낭 여행을 쫓아가 보는 것이 재미있을까?’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는데, 처음에는 예쁘고 섹시한 여자들을 보내자는 데서 시작했지요. 그렇지만 젊은 사람들이 배낭여행을 한다는 건 사실 누가 봐도 차별화된 아이디어가 아니잖아요.

그래서이번에는그러면 배낭여행이라는 것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집단은 누구일까?’를 상상해보았어요. 그랬더니 여러 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 ‘글쎄, 70세 넘은 할아버지들은 절대 배낭여행을 하지 않겠지’, ‘, 그래? 그럼 할아버지들이 배낭여행을 가는 프로를 만들어보자.’ 그게 바로 차별화의 아이디어의 시발점이었습니다.

할아버지연기자들, 이를테면 이순재 선생님이나 신구 선생님 같은 분들을 저희가 연기 연습시켜서 그 위치, 그 연배까지 만든게 아니잖아요. 저희가 발명한 게 아니에요. 그분들은 늘 거기 있었어요. 그런데 어떤 예능 PD도 그분들을 예능 프로그램에 모셔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은 거죠.

결국제가생각하는크리에이티브는이거예요. 빤한 것들을 충돌시켜서는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아요. 전혀 다른 극과 극의 물건을 일부러 꽝 하고 부딪치게 만드는 거예요. 그럼 거기서 뭔가 스파크가 일어나죠. 배낭여행이라는 것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할아버지라는 소재를 꽝 부딪치게 한 거죠. 그럼 거기서 당연히 스파크가 일어나요.

여기서말하는스파크란어떤스토리, 갈등, 그에 따른 긴장감, 위기, 이런 것들이에요. 굳이 PD가 나서서 연출을 하거나선생님, 여기서는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아도, 말도 안 통하는 낯선 곳에서 걸어가며 길을 찾아가야 하는 것 자체가 그 할아버지들에게는 늘 위기이고, 갈등인 거예요.

서로부딪쳐서스파크가날수있는요소를찾는것, 그래서 무언가 새로운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바로 저희 방송에서 말하는 크리에이티브라는 거죠. 그래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크리에이티브 아이디어는 발명하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이게어쩌다한번나오는아이디어가아니라지속적으로크리에이티브하려면시스템을갖춰야한다고생각해요. 저희가 회의할 때는 PD들과 작가들이 10명 정도 모이는데 그 사람들이 모두 크리에이티브한 것은 아니죠. 어느 조직에나 이런 사람이 있으면 저런 사람도 있으니까요.

대신에제가중요하게여기는한가지가있습니다. 저는 개개인의 취향, 정서, 판단기준,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판단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평소 잘 관찰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떤 안건에 대한 그 사람의 말 자체보다는 그 사람의 기준과 눈높이에서 이해해보려 애씁니다.

할아버지들을어떻게캐스팅하게되었느냐를조금더말씀드리죠. 저희 팀에 무척 고루하고 감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여행 가자는 이야기를 한 거예요. 마치 효도관광처럼. 원래 그런 걸 좋아하는 친구니까 그 친구 기준에서 나올 수 있는 지극히 빤한 아이디어죠. 그래서 다른 구성원들한테 돌아가며 물어보았습니다.

우리팀에는그친구와정반대의시선을가진친구도있거든요. 그 친구는 젊고 예쁘고 잘생긴 연예인을 좋아하고, 좀 어린 취향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편견이 없다는 장점이 있어서 그에게 물어봤어요. ‘할아버지들이 배낭여행 가면 어떨 것 같아?’ 그랬더니, 그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 누가 나가는데요? 어떤 할아버지요?’ 그래서이순재 선생님, 신수 선생님, 이런 분들. 어때, 재미없지?’ 했더니? 그분들 뭐 하시는 분들인데요? ~ 드라마에 나오는 분들? 난 재미있을 것 같은데그러더라구요.

그친구랑다른젊은친구들의견을들어보니까이거는매력적인구성일수있겠다싶었죠. 하지만이제까지와는 다르다’, ‘남들과는 다르다는 아이디어가 과연 히트 칠 수 있는지를 판단하려면, 그야말로 내공이 있어야 해요. 경험에 바탕을 둔 직감력이죠.

사실저는이사람저사람의정보와판단을모아서그냥결정하는역할밖에없어요. ‘, 그러면 그걸로 결정하고 가자.’ 회사에서는 그러지 말라고 할 수 있지만 그건 제가 추진력으로 끌고 갈 문제인 것이고요. 결국 제가 계속 새롭고 차별화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저 혼자 창의적이어서가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힘인 것 같아요.”

<p220- 224>

 

대학 시절 한 교수님께 편집디자인을 배우면서 들은 디자인 원칙 중 아직 기억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대조 Contrast’이다. 그 당시 교수님은 언제나 시각적 대조를 강조하고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는데 시간이 지나 가끔 일상에서 흥미로운 브랜딩 사례라든지 음식, 공간을 발견하게 되면 언제나대조 Contrast’를 이야기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나영석 PD가 이야기한전혀 다른 극과 극의 물건을 일부러 꽝 하고 부딪치게 만드는 거예요.’의 부분을 다시 한번대조 Contrast’로 받아들이게 된다

대조란 두 대상의 조합에 기초한다. 어떤 대상을 구성하는 요소가 서로 어떻게 관계를 짓는가에 따른 관계성에서 대조가 탄생한다. 하나 이상의 모든 것은 조합의 원리에서 대조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전에 친구의 초대로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은 일이 있었다. 부모님이 여행가신 틈을 타 각종 음식을 사와 간편하게 먹었는데, 그때 함께 나눴던 메뉴 중 하나가 순대이다우연찮게 친구네 집엔 삼대진미로 꼽히는 송로버섯 페이스트가있었다.  송로버섯 페이스트를 삶은 간과 함께 먹었는데 그 씹는 질감이 참 좋았다. 팍팍하게 씹히는 삶은 간에 독특한 향미를 가진 알갱이의 송로버섯 페이스트가 어우러져 묘한 대조를 만들어냈다

이렇듯 내가 무언가 좋은 경험을 하고 난 후엔 대개 묘한 대조를 발견하곤 한다. 아 또 하나, 나영석 PD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말 중 재밌는 표현이발견이다. 발견은 애초에 우연이라는 시간성을 전제한다. 완벽히 계획되지 않은 시공간에서 우연한 만남을 발견이라 생각하는데, 디자인을 하다 보면 이런 발견의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브레인스토밍 기간에 생활하는 일상의 사소한 것을 마주하며 순간의 아이디어를 만난다. 나영석 PD의 진정한 내공은 이러한 사소한 발견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며 어떠한 결과물로 조직하는 힘이라 생각한다.

 

저가격 가성비 기능 품질 명성

<p146>

 

홍성태 조수용나음보다 다름 : 북스톤, 2017

닮아가는 디자인, 톰 딕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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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VANS slip on by &otherstories

 

교회에서 멘토링을 받던 중, 자연스레 세계적 디자이너 톰 딕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집에 돌아온 뒤, 톰 딕슨에 대해 검색을 하던 중 한 인터뷰에 유독 눈이 가서 옮겨본다.

 

Q 젊은 디자이너에게 조언한다면.

인터넷 발달로 디자인이 빠르게 서로 닮아가고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있어도 인터넷에 올리면 곧바로 공공재산이 된다. 과거에는 디자이너가 작품을 단시간에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길이 없었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독특한 모양새나 자기만의 스타일을 개발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이미지와 영감 과잉이다. 자기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뭔지 알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자기 아이디어를 밀고 나가야 한다.

[사람 속으로] 세계적 조명·가구 디자이너 딕슨. 박현영 중앙일보 (2015 12 7).  http://news.joins.com/article/19194632

 

톰 딕슨의 조언에 깊은 공감을 하며, 다이어리오브에 옮겨 적었던 독창성에 관한 C.S 루이스의 글이 떠올랐다.

 

어떤 인상을 주고 있는지 고민하기를 집어치우지 않는 한, 남들한텐 결코 좋은 인상을 줄 수 없다.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까지 독창성에 집착하는 이들은 그 누구도 독창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저 진실을 말하려고 노력한다면(예전에 얼마나 자주 나왔던 얘기인지 따위에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고), 저도 모르는 새에 열에 아홉은 독창적이 될 것이다. 자신을 버려라. 참다운 자아를 찾을 것이다.

C.S Lewis, Mere Christianity(San Francisco : Harper, 2001), 226.

 

디자인이 예술도 아니고, 나는 톰 딕슨이나 C.S 루이스 같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영역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도 아니기에, 위와 같은 문장이 나에게 어떤 적용 점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인지하지 못하거나 의도치 않게 창조자들은 마치 몇 안 되는 인격만 세상에 있는 것처럼 엇비슷한 스타일의 작품이 눈에 띈다. behance.com pinterest.com 그리고 요즘의 SNS인 인스타그램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상 플랫폼을 보다 보면 비슷한 작업을 하는 사람을 발견한다. 톰 딕슨이 언급한 것처럼 ‘인터넷 발달로 디자인이 빠르게 서로 닮아가고 있다.’

무언가 만드는 나에게 창작물이 닮아가는 현상을 경계하기란 쉽지 않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만드는 REFERENCE(사례) 폴더를 놓고 다시 한번 고민해본다. 한 프로젝트를 놓고 핀터레스트에 보드를 하나 만들고 인터넷을 유랑하며 수많은 사례를 모아놓는데어떨 땐 수많은 결과물로 다음 단계를 진행하기에도 어려울 때가 있다. 작업 논리가 생기기 전 수많은 영감 과잉으로 선택 장애가 온다고 할까나. 물론 한 프로젝트를 놓고 유사한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여러 관점에서 본질에 가까운 디자인을 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독창적인 창조물이 발표되었을 때, 그것은 인터넷의 발달로 빠른 속도로 세상에 퍼져나가고 이에 따라 이전보다 빠르게 그 독창성은 희석된다. 독창성이 희석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첫째로는 희소성의 상실이 아닐까. 유일무이함을 내포하고 세상에 태어난 독창적 창조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리즈물, 쌍둥이 같은 창조물을 만나게 된다

독창성이 견고해지기 위해서는 창조자가 연속적으로 작업하며 한 사람의 고집스러운 무형의 규칙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동시대에서는 세상에 발표 후 즉각적으로 오는 수많은 반응 때문에 이러한 무형의 규칙을 계속해서 훈련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또 이러한 환경은 C.S 루이스가 말한어떤 인상을 주고 있는지 신경 쓰게 한다. 물론,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것은 혁신적 권위를 가진 디자이너나 창조자에겐 필수불가결하지만, 빠른 주목뿐만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마주하는 환경은 독창성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닮아가지 않기 위한 독창성을 인정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독창성에 대한 집착 또한 경계해야 한다. 나도 이러한 경험이 많은데, 무언가를 만들 때 이전에 봤던 경향이 후에 비슷한 경향성으로 향할 때 그 독창성에 대해 평가절하한다. 나는 특히나 새로운 경향을 관찰하고 탐색하려고 하기에 특정 스타일에 대하여 지루함을 느끼는 경우 또한 빈번하다

주변 환경에서 받아들이고 보아온 것을 모방하지 않는 독창성이 필요함과 동시에,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관점 아래창작한 것이 이미 세상에 존재하여 가치가 덜하다고 느낄지라도 독창성을 위한 독창성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창작물이 나다운 것, 프로젝트 목적성에 부합한다면, 본질에 가까운 것이라면 그 창작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image @johnminlee

발뮤다, 테라오 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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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BALMUDA The GREENFAN

 

<0.1밀리미터의 혁신>을 읽었다. 5년 안에 50배 성장한 발뮤다 디자인의 비밀이라는 강한 부제를 품고 있는 표지다. 발뮤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작년 친구를 통해서였다. 제품 디자인을 공부한 친구는 뉴욕에서 공부하던 시절, 곳곳의 세일 정보를 알아내 좋은 제품을 간간이 사곤 했다. VITRA 조명부터 찰스폴락의 오피스 체어에 이르기까지 넓은 분야의 라이프스타일 오브제를 직접 구입해 사용해볼 정도로 제품 디자인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그런 친구의 한국 집에 놀러 갔을 때, 발뮤다의 공기청정기 ‘에어엔진을 보게 됐다. 하지만, 그 당시 발뮤다에 대해서 그렇게 큰 관심이 있지 않았기에 제품을 보고선 그냥 지나쳤고, 그 후 몇 년이 지나 magazine B를 통해 다시 한번 발뮤다를 접할 기회가 찾아왔다.

magazine B에서 새롭게 진행하는 코너인 B CAST(podcast)를 통해 발뮤다 편을 들었다. 발뮤다의 탄생 이야기를 알기 전까지는 무인양품과 흡사한 보편적 디자인, 미니멀 디자인을 지향하는 가전제품 회사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B CAST를 통해 듣게 된 발뮤다는 전직 뮤지션이었던 ‘테라오 겐이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구축된 회사라는 사실을 접했고, 1인 기업으로써 지금의 발뮤다로 성장한 회사라는 사실에 굉장한 호감이 생겼다. 특히테라오 겐에 대해 많이 언급된, <0.1밀리미터의 혁신>이라는 책을 통해 발뮤다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선풍기, The GREENFAN이 탄생한 배경이 흥미로웠고, 자연풍과 흡사한 바람을 구현하려 깊은 사색의 시간을 거친 ‘테라오 겐’의 개발 과정이 감동적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감명 깊었던 부분을 발췌해서 적어본다.

소비자가 손으로 만졌을 때의 온도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합니다. 온도 변화가 빠르면 빠를수록 플라스틱을싸 보인다라고 인식하죠.”

.

테라오 겐 대표가 플라스틱 두께를 더하면서 또 하나 중요하게 여긴 점은 제품의 무게였다. 물건을 옮길 때의 용이성과 휴대성을 고려하면 가전제품의 무게는 가벼운 편이 좋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충분한 중량을 가지는 편이 유리하다. 테라오 겐 대표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플라스틱 제품은 얇고 가벼워야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두껍고 무거운 제품을 만들었다.

<p61>

.

프로 디자이너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디테일에 집착하게 됩니다. 한 발짝 물러서서 전체를 바라보는 일에 서툴죠. 그래서 저는 되도록 전체적인 분위기만 보려고 합니다. 물론 작은 부분까지 디테일하게 처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눈으로 봤을 때 느껴지는 첫인상이 더욱 중요하죠. ‘기능성을 강조하라는 지시도 그것이 결국 제품의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제품은 어디까지나 도구로서의 느낌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101>

.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고 느낄 때면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짚어봅니다. 가령 볕 좋은 어느 봄날, 제가 공원에서 간식을 사 먹었다고 가정해보죠. 거기서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기분이 좋았다면 그때 먹었던 간식의 맛과 냄새, 나무의 향과 잎사귀의 바스락거림, 거리의 소음과 하늘을 나는 비행기 소리, 발바닥에 느껴지는 감촉처럼 그 경험과 관련 있는 모든 감각을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만들어준 기분 좋은 감각을 몸의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느꼈고, 또 그때의 감촉은 어땠는지 하나하나 분석하며 머릿속에 입력해요.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점차 감각이 예민하게 단련됩니다.”

<p122>

.

“‘스테인리스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스테인리스는 처음에 어떤 형태를 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얇은 판일 것 같다는 대답을 들으면 또 그런 형태는 어떻게 만드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럼아마 프레스가 아닐까요라는 답이 돌아오는데, 이런 식으로프레스라는 단어를 알아내 인터넷으로 검색했습니다.”

<p208>

 

감각과 과정을 꿰뚫는 ‘테라오 겐의 통찰력이 위대하게 느껴졌다플라스틱의 두께가 소비자에게 고급스러운 경험으로 연결된다는 것은 무의식 속에 모두가 느낄지 몰라도제품 개발 과정에서 그러한 개념을 더하여 실제 제품화시키는 과정은 정말 인상 깊었다. 또한, 좋았던 경험을 세밀하게 관찰해서 그것과 같은 경험을 다른 맥락에서도 동일하게 소비자에게 전달하려는 모습 또한 본받고 싶은 관찰력과 구현력이었다

17세의 어린 나이에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던 ‘테라오 겐’이 찍혀있던 사진의 주석이 잊히지 않는다.

중학교 2학년 때 사고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생명 보험금을 여행자금으로 삼았다.

<p205>

모리야마 히사코, 닛케이디자인0.1밀리미터의 혁신 : 다산북스, 2017

 

발뮤다를 대하는 개발자로써 태도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써 삶에 대한 그의 태도 또한 인상 깊었다. 앞으로 발뮤다, ‘테라오 겐’의 행보가 기대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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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모리 선생님이 말문을 열었다.

“죽어가는 것은 그저 슬퍼할 거리에 불과하네. 불행하게 사는 것과는 또 달라.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불행한 이가 아주 많아.”

“왜 그럴까요?”

“글쎄… 무엇보다도 우리의 문화는 우리 인간들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네. 우린 거짓된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구. 그러니 제대로 된 문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굳이 그것을 따르려고 애쓰지는 말게. 그것보단 자신만의 문화를 창조하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네. 그래서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불행해. 이런 상황에 처한 나보다도 말야.”

 

 

미치 엘봄,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세종서적,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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